육아관찰기 (29) - 아이의 손이 펼치는 또 다른 목소리

육아관찰기 (29) - 아이의 손이 펼치는 또 다른 목소리

 


이번에는 아이의 '손'을 주제로 잡았습니다. 아직 말 못하는 아이가 주위와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역시 소리와 몸짓이 제일 흔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이걸 알아듣는 일은 꽤 난이도가 있을 수 있는데, 많은 아빠들이 언어로 의사소통이 안되는 이 시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아이와 말이 통할때쯤부터 잘 지내면 되겠지' 하다가 아이와 서로 친밀감과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모습도 종종 보고는 합니다. 

이제 갓 돌이 지난 아이지만, 아이는 부모의 예상 이상으로 주변을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위를 파악하고 있다는 추측의 근거는 아이의 행동에서 나옵니다. 이제 아이 앞에서 너무 얕은 수를 쓰는 것은 너무 빨리 간파당해서(?) 별 효과가 없고, 나날이 아이와 부모의 기싸움, 두뇌싸움 수준은 높아져만 가고 있습니다. 네, 벌써말이죠... 그 만큼 아이의 요구 또한 점점 구체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는데, 저희 아이의 경우는 이런 요구의 상당 부분을 손짓으로 해결하는 법을 찾아낸 것 같습니다.

손을 쓰는 조작능력도 하루하루 좋아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물론 아이가 흥미 있어 하는 부분에 대한 것만 말이죠. 이제는 나무블럭 놀잇감도 2단을 넘어 종종 5~6단을 올리는 경우도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숟가락질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나 걸을 준비도 다 된 거 같은데 걸음을 뗄 생각도 안하는 것 등은, 아이의 발달이 늦어서라기보다는 아이의 꾀가 많아져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딱히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해서 숟가락질을 하거나 걸을 계기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죠. 역시, 엄마한테 가려고 펑펑 울면서 기어가기를 시작했던 것처럼 뭔가 바뀌기 위해서는 인내와 고통의 시간(?)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1. 아이가 말을 못한다고 해서 그냥 단순히 상황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걸 확인하려면 뭔가 가슴에 와닿는 피드백이 필요합니다. 제 경우에는 음....단순한 울음이 상황과 요구에 따라 다른 톤으로 바뀌고 할 때부터 어느 정도 납득하긴 했지만, 아이가 정말로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겼다고 확신하게 된 건 이 손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벌써 몇 달 전인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를 안고 있으면 아이가 그냥 주변을 구경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손을 쭉 뻗기 시작한 겁니다.

안고 있을 때, 아이가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손을 쭈욱 뻗을 때의 느낌은 음...풍수지리를 보는 지관이 막대기(?) 들고 땅의 기운을 찾아 가는 그런 느낌하고 비슷합니다. 품에 안겨서 어느 정도 목적지에 다다르면 손을 뻗는 걸 멈추거나, 만지고 싶었던 것을 만지고 하는 것이죠. 이 것도 처음엔 좀 애매했는데, 아이가 좀 크기 시작하면서 메시지가 아주 명확해졌습니다. 이런 경우가 아이의 발달사항 책들에도 나와 있긴 한데, 제 주위의 아이들을 보면 모두가 이런 식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주위에서는 이런 말을 들으면 절반 정도는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마다 표현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른 것 같더군요. 

그리고 이런 것들이 발전해서, 지금은 아이가 제 손이 닿지 않는 곳이나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하고 싶으면 1. 소리를 내서 주위에 있는 엄마나 아빠를 부른 다음 2. 손을 쫙 펴서 안아달라고 하고, 3. 안고 나면 얼른 고개를 돌리고 팔을 뻗어 그 쪽으로 가도록 유도합니다. 방향이 조금 어긋나면 다시 팔을 돌려 바로잡고(....), 원하는 위치에 가면 만족스러운 얼굴로 무언가를 감상합니다. 내리고 싶으면 엉덩이와 다리를 쭉 빼면서 신호를 보냅니다. 그 때 되면 아이를 바닥에 내리는데, 그러면 바로 기어서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이죠. 이 쯤 되니, 아직 아이가 걷지 못하는 것은, 못 걷는 게 아니고 안 걷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아직까지 안겨 다니고 기어 다니면 집 안에서의 이동은 대략 해결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이는 요즘 밖에 나가면, 유모차에 앉아만 있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2. 팔과 손을 쓰기 시작하면 가장 기본적인 의사 표현은 '가리키기' 가 아닐까 싶습니다. 뭔가 원하는 것을 가리키면서 원하는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죠. 물론 말이 없기 때문에 아이가 원하는 행동을 찾기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닌데, 그렇다고 그렇게 못할 것도 아닙니다. 대충 눈앞 손앞에 있는 것들 중에 아이가 원하는 물건을 가져다 주었을 때 눈이 반짝이면서 표정이 바뀌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집안에 참 여러가지 물건들이 있지만, 아이와 지내다 보면 주위 상황에 따라 이 아이가 무엇을 원할지 어련히 높은 확률로 짐작해낼 수 있게 되더군요.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아이는 손으로 가리키기 기술의 발전형을 구사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는 옆에 있는 엄마나 아빠의 손을 붙잡은 다음, 그 손을 자기가 원하는 물건 쪽으로 휙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대충 어떤 기분인가 하면 RPG나 어드벤처 게임을 할 때 화면 안에 손 모양의 아이콘이 뜨고, 이걸 아이템 위치에 놓고 클릭하는 느낌일 것 같습니다. 거리는 강도로 조절되고(....) 그러면 그 앞에 있는 아이템들을 적당히 가져 오면 되는 것이죠. 이게 가능해지고 나니 아이와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정확도가 꽤 많이 올라간 느낌입니다. 

이런 액션이 좀 더 발전하게 되면 좀 더 많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과로 손을 던지길래 사과를 가져다줬더니, 사과 위에 다시 아빠 손을 올리고 아빠 쪽으로 밉니다...이건 깎아서 먹여달라는 메시지입니다. 사실 이 때 개인적으로는 꽤 놀라기도 했는데, 아이가 사과를 먹기 위한 일련의 순서(?)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종종 온 가족이 식탁에 모여서 사과 몇 개를 깎아서 같이 먹는 티타임을 가지는데, 이 아이는 그 와중에 사과가 자기 입에 들어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를 잘 알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깎아놓은 사과가 있으면 아빠 손을 그쪽으로 바로 던집니다. 

책을 넘길 때도 특이점이 있습니다. 거실에서 놀다가 책이 보고 싶으면 옆에 있는아빠의 손을 잡아 끌고 책장 쪽으로 계속 던지면서 끌고 가서, 책장에서 자기가 보고 싶은 책 방향으로 또 손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 책이 가까이 오면 그것을 펼치는데, 넘길 때도 전 페이지로 갈 때는 왼쪽, 다음 페이지로 갈 때는 오른쪽, 그리고 책 안에 뭔가 접힌 것을 펼칠 수 있다거나 뭔가를 뽑아낼 수 있다거나 하면 그 페이지의 중간으로 아빠 손을 던집니다. 심지어 정확한 전달을 위해 손 던질 위치를 조준까지 합니다...... 뭐랄까 이런 아이에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의 조작 방식은 정말로 디지털 네이티브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종종 스쳐 지나갑니다.


3. 이렇게 손을 쓰는 데 익숙해지면 일상에서 꽤 재미있는 상황들이 펼쳐지고는 합니다. 이제 저희 아이는 아침에 온 가족 중에 가장 먼저 일어나(!) 아빠를 깨우는데 있어 더 이상 예전처럼 소리지르고 울고 그러지 않습니다. 아기침대 문을 흔들어 소리를 내고, 머리맡에 자고 있는 아빠를 손으로 탁탁 때려 깨웁니다. 이렇게 저는 아침마다 맞으면서 일어납니다. 허허..이렇게 일어나게 되면 음...아침의 조용한 분위기가 깨지지는 않지만 느낌이 좀 묘합니다. 그리고 거실에 나오면 아이가 애용하고 있는 개구리전화기 뮤직박스로 아빠 손이 던져지는데, 그러면 아무 번호나 눌러서 일단 노래를 켭니다. 노래가 나오면 아이는 아침을 깨우는 리듬타기 체조(?)를 하면서 기운찬 하루를 시작하고, 8시 전후로 엄마를 깨우러 방을 습격하는 것이 어느 정도 고정된 일과처럼 흘러갑니다.

어느 날은, 집에 늦게 들어온 다음날 아침에 아기와 일찍 일어났더니 너무도 졸려서, 아이가 아내 방에 가서 아내를 깨우고 아침 인사를 하는 동안 제가 교대하듯(?) 자연스럽게(?) 그 방의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잠깐 잠이 들려는 찰나에 아이가 저를 보더니 살짝 웃으면서 옆에 있던 엄마 손을 잡아 저한테 집어던지더군요;;; 이 메시지의 뜻인 즉슨 '엄마 빨리 아빠 다시 깨워서 놀아달라고 해줘' 로 해석됩니다. 덕분에 다시 끌려 일어나서 아이의 식사 시간 동안 커피 한 잔과 함께 식탁에 붙잡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쯤 되면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았지만 할 말 다 하는 아이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팔과 손을 쓰면서 요구를 전달하는 데 익숙해지다 보니, 분명 아이가 할 수 있는 행동임에도 옆에 있는 엄마, 아빠의 손을 던져서 대신 해 달라는 메시지도 종종 보내고는 합니다. 책을 넘기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옆에 있는 아빠의 손을 던진다든가 하는 것이죠. 분명히 잘 넘길 수 있는 거 알고 있는데 옆에 있으면 너무 자연스럽게 주위의 조력을 활용하는 것이 참으로 눈치빠른 녀석이구나 싶습니다. 정말 '이런 어린애가 뭘 알겠어' 라는 분들이 있으면, 의외로 상상 이상으로 다 알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새삼 집에서도 말이나 행동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저절로 들 정도입니다.

4. 아직도 벽에 붙어 있는 아이들의 발달사항 관련 포스터를 보면, 지금 저희 아이는 세부 사항에서는 앞서거나 뒤처지거나 하는 게 있지만 평균적으로는 적당한 수준으로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직 아이가 걸을 생각이 없고, 말을 할 기미도 그다지 보이지 않지만 호기심도 왕성하고, 눈에 보이는 것들 다 만져보고 굴려보고 살펴보고 하려 하고, 가끔은 순서가 필요한 것까지도 기억하고 하는 걸 보면 딱히 크게 걱정하거나 조바심낼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블럭쌓기도 손동작 이상으로, 이제 어떤 블럭을 놓아야 잘 올라가는지도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느낌입니다.

사실 주위를 보면, 대략 11~12개월 전후로 걷기 시작하는 아이들이 꽤 있습니다. 저도 당장 지난 달에 도서관 아기둥지방 갔을 때 저희 아이보다 한달 늦게 태어난 아이가 걸어다니고 있는 것을 보고 왔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의 발달이 경쟁할 만한 것도 아니고, 아이의 대근육 발달은 꼭 지능 같은 부분과 크게 연결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아이가 잔꾀가 먼저 늘면 소근육은 좀 더 늘고, 대근육은 더 늦어지는 게 아닌가도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근육의 경우에는 뭔가 계기가 필요하고, 고통과 인내의(?) 시간도 필요한게 아날까 합니다.

그리고 음...아이가 걸음이 늦고 말이 늦고 하는 게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 사실 제가 어릴 때 말이 좀 많이 늦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지금 제가 말과 글로 먹고 살고 있는 거 보면, 어느 범주 정도 안에만 들어가면 일단은 괜찮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너무 어린 시절부터 주위의 아이들과 비교할 필요도 없고, 조바심 가질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렇게 초탈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절대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죠. 저도 앞으로 아이가 더 크면 어떤 마음을 먹게 될지 솔직히 장담할 수 없을 거 같습니다만, 그래도 지금의 여유를 앞으로도 간직해 나가고자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와중에도 아이의 행동발달은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요즘은 평소에 관심이 없던 숟가락질도 조금 해보려고 하고, 직접 이유식을 떠서 먹어보기도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먹을 것에 대한 호기심도 크고, 식사 시간에는 엄마가 먹는 것들을 같이 먹어보려고 떼를 쓰기도 합니다. 덩달아 좀 더 확실한 취향과 함께 짜증도 늘어가는 듯 해서 약간은 걱정입니다. 아내가 요만할 때 그렇게 예민하고 까칠하고 도도한 아이였다고 하는데 설마 이 아이도....물론 아내는 아이를 보며 지금 정도면 자기 어릴 적 정도는 아니라고 합니다만 그래도 약간은 걱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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